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예수님이 거듭난 사람을 친구라 부르는 이유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14-15 

예수님이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는다 하신다.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즉 성령으로 나의 영이 살아나고 물로써 나의 악한 행실을 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실상 성령님의 터치를 받고 영적인 분별이 어느 정도 생겼다 하더라도 물로 그 행실을 씻어냄이 없다면 아직 거듭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는 영적인 것을 이해하고는 있겠지만, 실상은 동물 (동물의 일종인 호모 사피엔스 상태)이므로, 동물은 동물끼리 모이면 곧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으려 애를 쓴다.  속안의 각종 욕구 혹은 정욕(성경에서는 '정'이라 표현하심; 거듭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하신 그 정)들이 이상한 형태로 변화되어 나온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예를 들어 자신의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잘 생긴 사람을 보면 이상한 방식으로 정욕을 표현해서, 서로를 미워하게 만든다거나, 자신이 마치 보호자라도 되는 양, 남녀간에 조심하라는 엉뚱한 조언을 한다든지 ...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표현한다.
혹은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내서, 어떤 무의식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야 만다.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바탕이 되는,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거짓이다.  이 거짓은 심지어 본인조차도 속여, 그 근본 원인을 가르쳐 주지 않지만, 골방에서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조명될 수 있다. 
그런 동물적인 공격적이고, 자신보다 남을 비교하여 속으로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방식은, 프로이트가 그의 심리학에서 분석해 놓은, 무의식의 성욕의 상관관계에 근거한 심리학적 분석(나는 그것을 더러운 학문이라 생각한다)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기 이전, 동물의 상태에서는 프로이트 심리학에 분석해놓은 것과도 같이 비뚤어진 성욕이 둔갑하여 엉뚱한 형태의 무의식으로 남을 물어뜯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결국은 주님 말씀하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진리에 귀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것을 심령으로 알게 된 이는 이제 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나 주님의 친구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분이나 연수같은 세상 교회의 스펙을 가지고, 자신이 거듭났고 뭔가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열심히 노력하나, 실상은 본인이 먼저 거듭나 참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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