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8일 월요일

나는 언제부터 전할 자격이 되는가 그리고 무엇을 전할 것인가?

현혹되기 쉬운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어떤 말은 너무나 그럴싸 해서 몇 시간 혹은 몇 일이 지나고서야 그 말을 한 사람의 참 뜻을 깨달게 될 때도 있다.
나 자신은 전도때문에 혹은 타고난 성격때문에 말할 때는 될 수 있으면 쉽게 요점을 이야기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로는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될 땐 돌려서 이야기 하게 되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후회할 때가 많다. 전하려는 메세지가 전달 되지 않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인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이런 현혹되기 쉬운 말들이 있다. 특히 전도와 관련되어 이런 말들은 전도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낙심시킬 때가 있다. 바로 전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나 혹은 어떤 자격같은 것을 받아야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물론 성경에도 "에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라는 말로 나와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란 언제 받는 것인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적인 용어보다는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심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고마와서 진심으로 눈물이 날때! 성경에도 성령이 아니고는 주를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그 은혜가 있다면 이미 전도할 자격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부차적인 것이 더 필요하지 않다. 내가 현재 매일 아내나 남편과 싸우는 못난 사람일 지라도, 혹은 내가 매일 돈 때문에 걱정하는 나약한 믿음일지라도, 성경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안 읽어본 초신자라 할 지라도 ... 내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전도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알면 왜 전할 수 없는가?
가끔씩 이런 말을 듣는다. 말씀으로 충분히 양육되고 자신의 교만이 낮아져서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을때 전도해라 - 이 말은 실제로 내가 언젠가는 들었던 말이고 몇 시간이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전도자의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던 그 "현혹되기 쉬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은 이렇게 되기가 굉장히 힘든다. 평생 우리가 성화되어가는 자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때, 즉 자격이 되어 전도할 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는 때는 내 삶에서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본다면 너는 평생 전도하지 말라는 말과도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전도자가 현혹되기 쉬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도자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육의 존재 - 하나님께 복종할 수도 없고 (롬 8장) - 가 이런 말에 항상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또 한가지 이런 종류의 말로, 전도의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있다. 즉 성도는 성경공부 혹은 말씀을 전하는 것을 교회의 지도자에게 맡겨야 하고 혹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 많이 사용되어지는 말이 바로 교회내의 질서라는 말이다.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전도가 되어 지지 않는다. 전도라는 말 자체가 예수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그 마음을 돌려놓으시지만 전해서 듣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마음을 예수께로 돌릴 수 있는가?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로마서 10:14-15)
나이를 먹어가면서 또 여러 사람을 만나가면서 사람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싶지만 그것은 깊은 심연과도 같아 진정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란 어떨때는 단 한 가지일에 대해서도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본인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모를때가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현혹되는 말들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어떤 충고의 형태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아주 세련된 방법을 통해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셨다. 마음을 열은 자는 누구든지 듣고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누가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하기 어려운 것으로,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전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 배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존재가 세련된 방법으로 복음으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중세시대의 신부들이 성경의 권위를 세운다는 미명아래 일반인들에게 성경을 못 읽게 했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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