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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8일 월요일

구원과 믿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믿습니까 입니다. 아주 간단한 복음의 진리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입으로 저절로 시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사실이 아닙니다. 즉 입으로 시인하면 마음으로 믿어진다는 것은 거짓이며, 믿지 않는 자에게 그것을 정확하게 말하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앞에 큰 죄악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13-14)


입으로만 부르라는 것인지 마음으로 믿으라는 것인지는 너무 명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현대 교회안에서는 그렇게도 불분명한지 답답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어떻게 얻습니까? 이것은 교회를 다니는 분에게 하는 간단한 질문입니다. 절대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간혹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6-17)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신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교였습니다. 그러나 종교학과가 있었고 몇 아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과 여러 종교의 책을 그야말로 학문으로 여기고 많이 읽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해석이나 역사/배경, 그리고 파생되는 여러가지 이론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많은 이들에게 믿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왜 믿음이 없습니까? 그것은 마음으로 믿지 않고 듣고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교회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마음으로 믿지않고는 성경공부 그 자체만으로는 믿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겸손하게 갈구할 때 믿음은 이미 들어와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기도 모르게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 10여년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면서 직접 제가 본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들어온 믿음과, 성경공부하면서 믿음주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간섭할 수 없는 것이며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제도 (성경용어로는 장로의 유전)이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겸손히 기도하며 기다리면 금방 성령을 받고 믿음이 생깁니다. "금방" 생긴다는 말은 제가 본 사람들을 통해서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이므로 사람이 그 때를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의 그 때는, 신실한 사람이 지쳐 넘어지기 전에 금방 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또 실제로 보아왔습니다.

그 시간이 1주일 혹은 6개월이 될수도 있고 10년이 될수도 있습니다. 혹 30년이 된다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비교하면 찰나의 순간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을 진실하게 기다리지 않고, 불필요한 인간의 면류관(여러가지 직분)을 씌워버림으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빼앗아 버리며 그것을 통해 마귀처럼 교만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장로님께서는 늘 만나면 교회일이 너무 바쁘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한번은 둘이서 밥을 먹은후 성령님이 마음을 이끌어주는 시간이 갑자가 있었는데 저에게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집사님 사실은 예전의 모든 열정을 이제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분은 교회 수십개의 소모임을 독려하여 1년 내내 자비로 CD를 구워서 전도를 다녔던 사람이다.

무엇이 이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는가? 그 분이 만약 계속 전도를 다녔다면 구할 수 있었던 많은 영혼들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속에 돌아올 사람은 다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변명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야비한 마음은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이다.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유명한 목사들의 몰락과 예수 복음

다음주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며 많은 책들을 버리게 되었다. 한때는 애지중지하며 언젠가 다시 볼날이 있겠지 하며 생각하던 책들이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깨달음 때문인지 이번에는 부담없이 버리게 되었다.

12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35장]

그중에 눈에 띄는 한권의 책은 강준민 목사가 쓴 "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는 책이었다. 책의 겉장에는 강준민 목사가 직접 한 싸인과 몇마디의 말이 적혀있었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때는 그 목사의 책이 굉장한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고, 내 자신도 몇권 (습관과 영적성숙?)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인가? 형통의 원리를 쓴 목사가 형통치 못하여 교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형통의 원리와는 어긋나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 책은 그 책을 쓴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쓰레기가 아닌가?

언젠가 그 분의 책을 읽으며 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을 가진적이 있다. 물론 이야기를 한다. 예제같은 걸로 ...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 자신이 깨닫고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 꿰맞춘 자신의 사상이 있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장]

그가 쓴 많은 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헷갈려 했을까. 언젠가 그 분이 동양선교교회의 소용돌이에서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을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냥 다 내려놓고 목사님을 잘 모르는 곳으로 가서 전도하며 살으라고 ...



새벽기도 관련한 여러권의 책과 그 외에 수많은 책을 썼던 한국의 차세대 목회자가 있다. 작은 교회를 1만명 규모의 교회로 성장시킨 사람으로 대다수의 신자가 젊은이들이라 차세대(?)라는 말을 많이 들 했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이단으로 모함해서 마음이 괴로워 그 교회의 웹싸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읽으며 위로받을려고 한 적이 있다. 굉장히 내용이 방대한 웹싸이트였는데 "예수"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니 단 4건이 나왔었다.

단 4건 ...

그 분의 이름만을 들어보았고 그 분의 내용을 알지 못했던 나는 굉장히 실망하게 된다. 그 분의 배경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에 걸맞게 하나님 이야기보다 세상적인 경영학 법칙이 압도적으로 많고 또 중심이라는 것, 여러가지 방법론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고 나는 다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무식하게도 그 분께 이런 부탁을 드렸다. 목사님 만약 30분 설교하신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최소한 30번은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 분이 인터넷을 통해 보낸 나의 메일을 보았을까 생각되지만 ...

최근에 그 목사님이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6개월(?)간 설교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 분은 몰락했다. 6개월이 문제가 아니고 그 이후론 그 입에서 성령님의 능력이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때 남을 헷갈리게 만드는 방법으로 한다. 미국 속담에도 "Convince할수 없으면 Confuse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Confused되지 않으시리라 ... 우리가 하나님이 Confused됐다고 (혹은 속였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도 그 분은 우리를 참고 계신것이리라. 그 분은 우리의 중심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가위눌림



(1) 저는 현재 42살입니다. 30세까지 거의 매일 밤 가위에 눌렸습니다. 시작은 국민학교때부터 한 것 같습니다. 어릴때 우리 집은 귀신단지 (작은 상자에 향같은 것 꼽아놓고 죽은 사람 이름 써놓은 것)를 모셨습니다. 우리 먹을 것은 없어도 귀신 앞에 매일 밥을 떠다놓곤 했었지요. 우리 외할머니는 중풍으로 알아누우셨는데 소원이 그 귀신 단지를 없애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나와서 아픈 사람을 계속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식구중 어느 누구도 무서워서 그 단지를 감히 없앨수는 없었습니다. 저와 우리 이모, 그리고 대부분의 가족들이 밤마다 가위에 눌렸습니다. 저는 밤새 눌릴 때도 있었고 숨을 못쉬어 허덕이면서 이러다가 죽는 것이구나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수십년 지속되었습니다.


(3) 놀라운 건, 나중에 고향을 떠나온 후, 이모와 우연히 이야기 하던중 그 가위에 눌릴 때 나오던 귀신의 모양이 이모와 저가 본것이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양은 통상적인 상상속의 귀신 모양이 아닌, 아주 새빨갛고 표면이 매끄러운 자르지 않은 단무지 모양의 두개의 물체였습니다. 저와 이모는 수십년 후에도 이 특이한 모양의 귀신의 형태가 일치함에 치를 떨었습니다.


(4) 30세 되던 해에 그냥 놀러 다니던 교회에서 사람들의 이중성 때문에 교회를 떠나려고 하던중, 성경을 혼자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며 믿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정말로 계셨습니다.


(5) 울면서 나같은 것때문에 이 우주를 먼지처럼 여기시는 크신 하나님(=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 바로 나 때문에 ... 이 사실을 성령을 통해 마음으로 깨닫게 된후 (그전에도 교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감당못해 몇 달간 회개하며 울기만 했습니다. 하나님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


(6) 놀라운 건, 그 이후 그렇게 수십년간 나를 괴롭히던 가위눌림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한지 12년이나 지난 지금껏 단 한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예수님)이 나를 잡고 있던 마귀를 완전히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저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그 이후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진심으로 믿을 때 동일한 현상이 일어남을 보았습니다.


(7) 중요한 건, 죄인임을 회개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것은 전혀 해당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 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계십니다.


저의 이메일은 mkim.help@gmail.com입니다. 지금 괴로움을 당하시는 분은 이메일 주시면 함께 기도합시다. 무당이나 집에 그런 분이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럴수 있습니다. 저도 대한민국 웬만한 절에는 제 이름이 기와장 밑에 세겨져 있습니다. 잘되게 해달라고 우리 모친이 옛날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그 모든 것들이 여러분을 절대로 해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걸고 맹세코 여러분을 더러운 흑암이 이기지 못합니다. 함께 기도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087417
http://tinyurl.com/759c3r7

2010년 1월 3일 일요일

구원에 대한 가짜신자와 진짜신자의 태도

예수님의 사람은 늘 구원에 감격해 한다. 그 사람이 1년을 믿었던 30년을 믿었던 십자가의 구원에 늘 감격해 하고 눈물흘린다. 십자가가 아닌 것에는 웬지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가짜 신자는 그 믿은 년수나 직분, 그가 심지어 성직자이든 직분자이든 관계없이 구원이 아닌 것에 몰두한다. 왜냐하면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자취를 남길수 있는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땅의 소산(창세기 4장)은 받지 않으시며 오직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창세기 4장)만 받으신다.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이라는 것은 성령님(기름;기름부으심)의 도우심을 통한 예수님(양;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 성경에 수백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무서운 것은 구원은 마치 예수를 믿지 않고도 교회만 출석함으로써 받는 어떤 것으로 은연중에 느끼게 만드는 교회안의 분위기, 명백히 사단이 주장하고 있는 그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교회 다닌 햇수나 직분을 잊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나는 예수를 믿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그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라. 죽으면 없어질 모든 껍데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

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전도자로서의 나 자신의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Quotes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6)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자 대신에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 ?

슬프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본질이 오늘날의 복음전도자들에 의해 잘못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자 대신에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를 전한다. 바로 이 점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으로 속고 있다. 왜냐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육욕과 세속적인 마음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이 조금도 없이 불못만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Practical Christianity, by Arthur Pink)



신실한 말씀을 선포함으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

복음전도자가 죄에 관하여 선포하는 것, 단지 죄에 관하여 상투적으로 몇 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가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것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지 않고 청중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칭찬을 얻는 것보다 사람의 칭찬을 사랑하는 자와, 영혼 구원보다 자기 봉급에 더 가치를 두는 자는 그에 알맞은 임기응변의 조치를 취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말씀의 선포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신실한 말씀을 선포함으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부정하게 육체와 영합하여 성령을 쫓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Practical Christianity, by Arthur Pink)



"십자가와 부활을 거의 전하지 않고 유대교를 흉내 내어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주로 전한다면 기독교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고 교회는 왜 있어야 하나?"
(권순구 교수)

2009년 11월 8일 일요일

세상 박수받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이 글은 릭 조이너(Rick Joyner) 목사님이 쓴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The Final Quest)"이라는 책에서 발췌(p.241-252)한 것이다. 목사님은 기도중 입신의 경험을 하게 되며, 그 때 하늘나라에서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 왕노릇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을 깨달게 한다.


릭 조이너 목사님이 영적인 경험을 통해 전해 들은 그 이야기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며 그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자리를 구하지 않고 예수님과 그가 전하신 복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은 멈추어 섰고, 나는 우리 옆의 보좌들 위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아직도 가장 높은 왕들이 앉아 있는 곳에 있었다. 그 때 나는 바로 옆의 한 남자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내가 어디에서인가 알고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인지 기억을 할 수 없는데요.”


“당신은 환상속에서 나를 보셨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 즉시 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당신은 실제 인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러자 나는 내가 아직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내 삶의 어떤 문제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을기억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아파트 근처의 공원 한가운데 나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주님께서 내게응답해 주실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상태였다. 내가 앉아서 성경을 읽는 동안 나는 환상에 빠졌었는데, 그것은 내 생애의 첫번째 환상이었다.


그 환상속에서 나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쉬지 않고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가르치고, 아픈 자들을 방문하여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주님일에 대단히 열심이었고 사람들에 대한 순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또 다른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영락없이 방랑자이거나 집 없는 사람이었다.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잘못하여 그가 가는 길로들어가자, 그것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발로 고양이를 바깥으로 매우 거칠게 밀어내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내게 이들 두 사람중 누가 더 주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지를 질문하셨다.


“첫 번째 사람이지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다. 두 번째 사람이다.” 그 분이 이렇게 대답하시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첫번째 사람은 대대로 주님을 믿어온 아주 훌륭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아주 부흥하는 교회 내에서 양육되었고 가장 훌륭한 성경 학교들 중 한 곳에 다녔다. 그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백이 주어졌으나, 그는 오직 일흔 다섯만 사용하고 있었다.


두번째 사람은 귀머거리로 태어났다. 그는 학대받았고 어둡고 추운 골방에 갇혀 지내다가 여덟 살때 당국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옮겨졌으나 가는 데마다 계속학대를 받았다. 결국 그는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그에게 그 분의 사랑 셋을 주셨으나, 그는 그것을 마지막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격노와 싸운 끝에 그 새끼 고양이를 해치지 않도록 억제하였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이 솔로몬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휘황찬란한 보좌위에 왕으로 앉아있는 것을바라보았다. 수 많은 천사들의 무리가 그의 분부를 기다리며 그의 주변에 정렬하고 있었다. 나는놀라서 주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여전히 그가 실제 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하물며 이 위대한 왕들 중에 있다는 것은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주님, 그의 마지막 이야기도 해 주십시오.” 내가 간청했다.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온 것이다. 안젤로는 내가 그에게 준 적은 것에 너무나 충성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사랑 셋을 더 주었다. 그는 그것을 모두 사용하여 도둑질을 그만두었다. 그는 거의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는 빈 병을 모으고, 가끔씩 잡일을 시키는 사람들을 찾아가 생기는 돈으로 먹을 것을 샀다. 그는 들을 수는 없었지만 글 읽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복음 전도지 한 장을 보냈었다. 그가 그것을 읽었을 때성령이 그의 마음을 열어주었고 그는 자기 생애를 나에게 전부 바쳤다. 나는 다시 그에게 나의 사랑의 갑절을 더 주었고 그 후 그는 그 모든 것을 충성되게 사용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그러한 빈곤속에 있었으나 그가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전도지에 사용하여 길 모퉁이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몇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까?” 나는 그가 왕들과 함께 앉아 있으려면 엄청난 숫자일것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질문했다.


“한 사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그를 격려해 주기 위해 알코올 중독자 한 사람을 내게로 인도하였다. 그것이 그에게 큰 힘이 되어, 다른 한 영혼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길 모퉁이에 몇년이라도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 전체가 나에게 그를 이곳에 데려올 것을 간청하고 있었고나도 그가 자신의 보상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왕이 되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내가 질문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충성하였다. 그는 나와 닮게 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결국 순교자로 죽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극복하였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순교자가 되었습니까?”


“그는 나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겼다. 그토록 적은 것으로 그렇게 많이 이겼던 사람은 너무 적었다.나의 백성중 많은 사람이 한 세기전만 해도 그 편리함 때문에 왕들도 부러워했을 만한 편한 집에살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반면, 안젤로는 추운 밤 종이 상자 하나를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그것을내가 임재하는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그는 사과 한 개를 가지고도 내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성대한 향찬에 대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그는 내가 그에게 준 모든 것에 충성하였다. 그것이 비록 내가 너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는 네가 그의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기 때문에 환상에서 너에게 그를 보여주었다. 너는 한번은 네 친구 한 사람에게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그에대해 말한 적도 있었다.”


“제가 그랬습니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너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버스 정류장에서 도망 나온 엘리야의 무리중 또 다른 한 사람이 있군요.’ 너는 그가 사람들을 복음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원수가 보낸 ‘광신도’라고 말했다.”


이 체험은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 중 가장 혹독한 파격이었다. 나는 충격 이상을 받았다. 나는경악했다. 나는 그 특정한 상황을 기억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았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와같은 단순한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색이 남루한 노방 전도자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큰 동정을 갖지 못해 왔었다. 내게는 그들이 사람들을 복음에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 특별히파견된 것처럼 보였었다.


“죄송합니다. 주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너는 다시 용서받았다.” 그 분이 즉시 응답하셨다. “그리고 네 말도 옳은 것이다. 잘못되고 심지어는 비뚤어진 동기를 가지고 길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신실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비록 훈련을 받지못하고 무식하다 할지라도 너는 외모로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안젤로와 같이 보이는 나의 참 종들이, 내 이름을 위하여 사람들이 세운 큰 교회와기관들 안의 세련된 전문직들 중에 있는 만큼 많이 있다.”


그리고 그분은 내게 안젤로를 쳐다보라는 몸짓을 하셨다. 내가 몸을 돌리자 그가 그의 보좌 앞의계단을 내려와서 바로 내 앞에 섰다. 그가 양팔을 크게 벌려 나를 껴안았고 아버지처럼 내 이마에입을 맞추었다. 사랑이 나의 전신에 쏟아 부어지면서 내 온몸을 통해 흘러 내려와, 나의 온 신경계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사랑이었다.


“그는 세상에서도 너희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는 내 백성에게 줄 것이 많았으나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나의 선지자들조차도 그를 기피했다. 그는 성경책과 두 어권의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으면서 믿음을 키웠다. 그는 교회에 가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를 받아 주는 교회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만일 교회가 그를 맞아들였다면 그들은 나를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는 바로 내가 교회를 향해 문을 두드리는 노크, 그 자체였다.


나는 애통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배우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가 순교자로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어쩐지 나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반은 예견하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그는 추위 속에 의식을 잃었던 한 늙은 술주정뱅이를 살리려다가 동사하였다.”


내가 안젤로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간증을 세속화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칭호인 순교자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님, 저는 그가 진정으로 승리자인 것을 압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온 것은 공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은 사람들도 순교자로 간주됩니까?”


“안젤로에게는 그가 살아왔던 매일 매일이 하나의 순교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겨우 생존할정도만 유지하였고 그의 생명을 필요로 한 친구를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였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들에게 썼던 대로, 네가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네가 사랑으로 네 자신을 주게 될때, 그것은 많은 것이다. 안젤로는 매일 죽었다. 그는그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을 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성도중 가장 작은 자로 여겼으나, 실상 그는 가장 큰 자중 하나였다. 네가 이미 배운데로, 스스로를 가장 큰 자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로 여김을 받는 자들중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가장 작은 자가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안젤로는 한 교리나 그의 증언을 위해서도 죽지 않았으나,나를 위하여 죽었다.”


“주님, 제가 이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돌아가서도 여기서 보고 있는 것을 잊지않도록 해 주십시오.” 내가 간청했다.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이것을 즉각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첫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1)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2)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3)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4)라, 모사(*5)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1-7)

이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쓰여진 예수님에 대한 예언서이다. 예수님은 해변길과 갈릴리(*2)에서 많은 사역을 행하셨다. 그래서 갈릴리 예수님이라고도 부르지 않는가? 스블론과 납달리 땅(*1)은 갈릴리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영화롭게 된 것,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비춰져서 무거운 멍애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꺽어지는 것이며, 피묻은 겉옷이 불에 살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 이 모든 것을 위해 태어난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3 옛날말로 표현된 정사 - 정부의 일)를 어깨에 메었고, 그의 이름은 wonderful(*4 놀랍다는 뜻의 옛날말 기묘자 - 신비한 사람, 영어성경으로는 Wonderful)이며, 모사(*5 Counsellor 즉 우리를 상담해줄 수 있는 사람 - 자신이 인간의 고난을 직접 겪음으로 인간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인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예수님은 원더풀하신 분이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상담해주시는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인 것이다.


2.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고 하셨다.

죄인은 하나님에게 직접 나아갈 수 없다. 전기가 필요한 사람이 전기를 구하려고 거대한 화력발전소의 불길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전기는 물론 발전소의 거대한 불에서 나올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앞에 서면 타서 없어진다. 죄인은 하나님앞에 직접 나아가면 그의 거룩하심을 충족시킬 수 없는 죄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소멸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의 육체로 그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아오라 했다. 예수님이라는 죄없는 양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가죽옷(창 3:21)을 입고 나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키시면 시킨데로 하는 것이 순종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에게로 나오라고 했다. 자기가 율법의 요구를 지켜,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왜 이 명확한 복음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또 알고도 늘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구원받으려고 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믿고 구원받으라고 했다. 새벽 기도, 주일 헌금, 교회 봉사를 통해 구원받는 다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를 믿고 그의 임재하심이 들어오면 교회의 여러가지 것들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러나 그 순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귀한 것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과, 그 반대로 예수님을 모르지만 교회에서의 주어진 역할과 다른 사람의 기대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두 가지는 똑 같아 보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리는 제사 창4:4)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땅의 소산으로 드리는 제사 창 4:5)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치 전기 콘센트와도 같이 작고 초라한 우리의 허영심이 기대하는 화려한 모습의 그 어떤 것이 아닌 그 예수 그리스도에 우리의 플러그를 꽂을 때 전기는 우리를 태어죽이는 무서운 율법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추울 때 우리를 얼어죽지 않게 해주고 인생의 더위로 나가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는 "작동하는 전기", 즉 성령님으로 임하시는 것이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서 53:2-3)



여기서 그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2009년 6월 6일 토요일

자신의 주위에서라도 예수님을 전하고자 하시는 분께

1. 사람의 마음을 돌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다.

마음이 하나님쪽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피흘리심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전하는 것은 우리 사람이다. 마치 노래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지만 그 노래를 좋아하느냐의 문제는 스피커가 (관심은 있을지라도) 어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정확한 소리를 그리고 듣기 좋은 소리로 노래를 재생할 것인지는 스피커에 따라 분명히 달라진다. 마치 직장을 잡으려고 이력서를 써내려가는 구직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어떻게 제대로 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2. 자기가 모든 걸 하려고 하면 스스로가 괴롭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도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없고 또 사단의 속삭임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나님보실 때 제대로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가지 추천할 만한 것은 가정 예배이다. 가정 예배는 굳이 매일 안드려도 괜찮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집에 왔을 때 말씀으로 초대하기에 정말 좋은 계기가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은 저녁에 예배를 드립니다. 잠깐이라도 함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본인이 복음을 정확히 전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전하면 되고, 그러지 않으면 성경의 구절 중 특히 예수님의 피흘리심이 기록된 부분(이사야 53장, 시편 22편 등)을 함께 교독(몇 줄씩 번갈아 가면서 읽는 것)하며 예수님이 나의 죄때문에 이렇게 하셨고 그를 통해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뜻풀이를 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평소에 복음에 대한 설교 말씀을 CD나 인터넷을 통해 알아두고 함께 들으면 된다. 사실 이 방법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노래를 잘하는 분은 말씀을 듣기 전에 좋아하는 찬양을 1-2곡 정도 반복(모르는 노래이므로 몇번 불러 익히는 데 도움을 줌)해서 부르면 굉장히 좋다.

3. 반드시 혼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을 일러준다.

성령님은 혼자서 말씀을 읽는 심령에게 역사하신다. 남들앞에서 마음의 밑바닥을 열기란 참 어렵다. 또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진실해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도 어렵다.

복음이 전해졌다면 반드시 자신이 은혜를 받은 말씀이나 책을 즉각 준다. 여러개를 주어도 듣지 않으므로 가장 핵심적인 1-2개를 주고 이것은 내가 은혜받은 것이고 당신도 같은(혹은 더 큰) 은혜를 받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 언젠가는 이것을 듣게 된다.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어 말씀이나 책을 읽었노라고 하면 성경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이나 로마서가 굉장히 좋다.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거듭남에 대해 ... 악인에게 생명을 약속?

요한복음 3장 3-5절에 기록된 바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다. 볼수없다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럼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나는 거듭났는가?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하고 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 슬쩍슬쩍 믿는 것같은 사람도 거듭났을 수 있고, 반대로 굉장히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마저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났지만 겸손한 개인 성품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나도 거듭난 이후 처음 몇년간은 그랬다. 구원의 확신을 물어오는 사람에게 늘 마음이 실제로 무거웠다.

그래서 많은 경우 교회의 지도자들 조차도 이 부분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거듭난다는 성경의 말씀으로 대신하곤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한 가지 크게 두려운 것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스스로 위안받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에스겔 13:22에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이라는 말씀이 나와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뜻이 좀 더 명확해 진다.

사악한 자에게 생명을 약속함으로 그의 손을 강하게 하여 그가 자기의 사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악인에게 생명을 약속했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나는 조심이 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주장하고 싶은 근거가 있다. 그것은 허풍쟁이이든 아니면 너무 겸손한 사람이든, 혹은 믿은 지 얼마되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아니면 목회자이든 ... 그런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를 정말로 믿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것은 성령님이 우리 영으로 증거해 주시는 것이며 남들이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본인은 분명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지 알것이다.

교회의 바자회나, 불우이웃돕기 행사나 아버지 학교나, 혹은 체육대회 그런 모든 행사장에서는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도리어 원래 훌륭한 성품이나 협동적인 사람들은 일을 참 잘한다.
그런데 영혼 구원의 현장에서 성령님이 함께하는 거듭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너무나 확연한 차이가 난다. 특히 아주 중요한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자라해도 영적인 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거듭남에 대해 잘 정리된 싸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읽고 나서 더 추가해 보겠다. http://www.regenerated.or.kr

2009년 1월 31일 토요일

전도에 대한 몇가지 깨달음

마태복음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내가 평생 묵상해야 할 말씀, 내가 어떻게 전도할 처지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라)


마태복음 4: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전도는 이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회개케 하기 위해 물(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회개의 권면과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그 이후 예수님의 영이 그에게 세례를 주시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너희들은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도 이 직분을 정확히 감당했다. 내가 성령받는 것을 인도하거나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교만이다. 예수님이 나의 연약함을 생각하시면 간혹 보여주실수도 있으리라.)

2009년 1월 27일 화요일

예수를 믿는다는 것 [퍼온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에 대하여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서로 잘 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설교로 듣거나 신학으로 배워서 아는 지식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오해하거나 착각합니다.

특히 현대신학과 다원주의 신학에 빠진
신학자들, 목사, 신학생들, 교인들이 착각합니다.
예수를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다원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됩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거리에서 신앙을 파는 사람들편)
에 나온 주장들이 치우치고 잘못된 것임을 분별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다" 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빠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나의 전존재로 체감했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생각만 해도 가슴에 눈물이 흥건히 고이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 심판의 비밀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의 의미가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천국과 지옥의 의미 역시 관념적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와 십자가, 하나님까지 피상입니다.
그들에게는 머리와 입술로만 고백하는 "유사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의 결박에서 사실적으로 벗어나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과 은사로 증거하시므로
하나님이 아시고, 나도 알고, 사람들도 알게 됩니다.
자신의 고귀한 존재 가치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내가 직접 받아서 안다는 의미입니다.
거기에는 형언 할 수 없는 큰 감격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 영혼 깊은 곳에서는 회개와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안다는 의미는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나, 1대1로, 주관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잘 알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마치 친엄마가 그 자식을 알고 자식도 친엄마를 알듯
서로가 실제적으로 잘 알고, 서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죄란
피상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며 철학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죄란...
그저 머리 속에 맴도는 개념이자 신학적 담론일 뿐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에게 신학과 신앙이란 단지
자기 취향에 맞추어 예수를 재구성해나가는 행위일 뿐입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들에게 주님은
모호한 역사적 예수가 될 뿐이지만
죄 사함을 받은 자, 구원 받은 자들에게
주님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동행하시며
역사하시며 주관하시는.. 한 인격이십니다.
그에게는 예수가 그의 생명이자 모든 것이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예수는
세계 4대 성인중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종교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죄 사함을 받고, 다시 태어난 자들에게 예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예수와 자신 사이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 누구도, 그 무엇이라도)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회심했다는 것이며
죄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며,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며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와 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그 자신이 움직이는 성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문학으로 무장한 신학,
지식에 천착하는 현학적인 담론,
종교를 넘나드는 배포와 관용을 과시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매료(魅了)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종교인들의 논리나 말장난에 속지 않으십니다.




위의 글은 아래의 웹싸이트에서 퍼온것입니다.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영화속에 숨겨진 복음

거듭난 사람들이 쓴 많은 소설이나 책들이 있다. 세상것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적은 숫자이지만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선배로서의 답이 많이 들어있음을 본다.

근현대 최고의 영성을 가진 철학자/작가로 일컬어지는 C.S.Lewis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쓰신분)의 Prince Caspian에서 나오는 대화를 보자. 이 대화는 4형제중 가장 어린 Lucy가 예수님을 보았지만 믿음이 적은 자들의 주장으로 예수님께 가지못하고 다른 길로 가게되고 그 후 예수님을 다시 만난 어린 Lucy가 Aslan(예수님을 상징)과 나누는 대화이다. 수년간 예수님을 사랑하는 동역자를 찾아헤맷던 나의 마음에 단비와도 같은 신앙 선배의 충고가 수십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져 오는 순간이었다.

Lucy: "I knew it was you. The whole time, I knew it. But the others didn't believe me."

루시: 나는 당신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여행하는 내내 당신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Aslan: "And why would that stop you from coming to me?"

아슬란: 나에게 나아오는데 그것이 방해가 되었니?





또한 Will Smith가 주연한 I am a Legend라는 영화의 끝 머리에 나오는 부분도 나에게 다시금 성경의 진리인 영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어떻게든 예수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하고 싶어 괴로워 하는 나에게 답과 위로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영화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처럼 된 많은 인간들은 그 원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깊은 건물 지하에 벌거벗은 채로 벽에 머리를 박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몰려있다. 캄캄한 밤이 되어 빛이 사라지면 세상으로 나와 썩은 고기나 다른 생명체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이들은 완전히 좀비가 되었지만 원래의 지능이 남아있고 그것을 사용해서 도리어 자신들을 살리려는 윌 스미스에 대한 계략을 세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오염되지 않은 피로 만든 백신을 만든 윌 스미스를 뜯어먹기 위해 달겨드는 좀비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인간의 광기를 의미한다. 이 때 나에게 충격을 준 영화속의 부분은 윌 스미스가 정말 목이 터져라 외치는 "나는 너희를 구하러 왔다"는 목소리가 Mute처리되고 좀비들은 전혀 듣지 못한다. "이 피로 만든 백신 주사만 맞으면 된다"고 그렇게 고함지르는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끝내 그들은 유리벽을 자신의 머리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부수고 들어와 윌 스미스와 함께 죽게 된다. 하지만 그 피로 만든 치료약은 극적으로 현장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에 의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복음을 전하다가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도 그들은 듣지 못한다고 하신다.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 영은 내가 살려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님을 통해 살아나는 것, 나는 그냥 스피커에 불과한 사실을 왜 이리도 자주 잊어버리는 지 모르겠다.





I am Legend

Will Smith 주연, 2007년 작품

줄거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혼돈속에서 모든 세상적인 것에 사로잡힌 인류는, 마침내 인류가 내세울수 있는 몇 안되는 선한 것중 하나인, 의약품에 까지 세상신에 사로잡힌 욕심으로 인해 인류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돌변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원래의 인간모습을 잃어버린 좀비의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 때 유일하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원래의 인간모습을 한 주인공이 나타난다. 그는 자기의 피가 인류를 멸망시킬 바이러스를 이기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 힘을 가지고 마침내 인류를 구할 약을 만들게 되는데 …

주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들

정말 많은 부분들에 깊은 의미가 숨어있지만 다음은 그 중 몇가지를 나열하고자 한다.
1. 사람에게 주어진 암을 극복하기 위해 더 무서운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물론 그 바이러스는 암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2.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빛이 비취는 곳으로는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된다. 빛이 비취는 곳에 나오면 그 빛으로 인해 죽게 된다.

3.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원래의 지능은 가지고 있고 이것을 자신이 살아나기 위한 것에 사용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살리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한다.

4. 간혹 오염되지 않은 피를 가진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극심한 고독속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어 스스로 죽어간다.

5.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말씀을 통해 사명을 향해 나아간다.

6. 마침내 인류를 구원할 약이 완성되는 순간, 좀비들은 감사하기는 커녕 도리어 주인공을 사력을 다해 죽이려고 달려든다. 이 때 주인공은 그 들에게 나는 너희를 살리러 왔다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좀비들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7. 주인공은 좀비들에게 죽게 되지만 그가 남긴 피를 통한 치료제는 극적으로 세상에 남게 되고, 그것을 통해 거듭나게 된 자들은 세상속에서 무리를 이룬다.

2008년 11월 11일 화요일

하나님을 믿는 방법

1. 당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라.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생겨났음을 상고하라.

2.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또 사람이 궁극적으로 가장 무서워하는 사망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사람의 몸으로 몸소 부활하심으로 깨뜨려 우리를 사망의 무서움에서 자유케 하신 구원자,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라.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은 구약 성경의 수많은 예수님에 대한 직접적 증거를 먼저 읽으라.

3. 이 복음은 하나님을 떠나므로 영이 이미 죽은 죄인에게 그냥은 믿어지지 않는다. 나 같은 죄인의 마음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해서 삶을 돌이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다. 내가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고백한 심령이 물과 성령, 즉 말씀을 접할 때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오직 성령체험을 통해 거듭난 자만이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믿어지게 된다.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천주교와 구원

수 많은 영적인 용사들이 천주교를 통해 나왔고, 또한 그들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된 자들이 많음을 안다. 하지만 현재의 천주교회는 명백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단이다. 1962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의 선언으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고 선언된다. 구원이 다른 종교에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참람한 말이며 오히려 지엽적이라고 볼수 있는 마리아 숭배나 성당안의 각종우상, 그리고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들보다 훨씬 정면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천주교 신자들을 전도하다가 느낀것은 그 중에서도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래의 성경말씀에서 천주교내에 분명 존재하는 예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오히려, 세상적으로 너무나 커져버린 그 이단의 세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하니님의 참된 복음을 소유한 자들을 나무라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된 자와 아닌 자를 정확히 구분하신다. 가라지와 알곡을 구분하시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새로운 관계라고 볼때 그것을 부정하는 천주교 공회의 선언은 참으로 "사단의 깊은 비밀"이라 볼수 있겠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천주교에서 실제로 행하는 많은 행위들을 칭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이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하나님 말씀을 엉뚱한 곳에 갖다 붙여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선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책망하는 진실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내가 못하더라도 선한 행위하는 자들은 인정해야 하고, 또한 타 종교에서 행해지는 선한 행위도 엄연한 선한 행위이다. 그것은 자체로 분명히 그 가치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고집부리면 거짓된 기독교 신자라고 여겨져서 전도가 안된다. 왜? 남의 선한 행위가 선하지 않다는 거짓말을 하니까. 한가지 분명히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은 그 선한 행위로 사람이 구원받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참된 전도자라면 남의 선한 행위를 칭찬하고 인정하지만 아무리 행위가 선해도 하나님을 떠난 원죄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흘리신 그 피를 믿는 복음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 일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선한 행위중에 제일은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전도이외에 다른 여러가지 행위를 함으로 전도에 대한 책임을 피해보려한다. 그것은 99%를 놓치고 1%를 붙잡는 것과 같다.

말씀에 기록된 음란한 죄는 영적인 음란을 의미한다. 성경 호세아 서를 읽어보라. 사람의 음란에 빗대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다.






18. “두아디라 교회 지도자에게 이렇게 써서 보내어라. ‘불꽃같이 빛나는 눈과 빛나는 청동 같은 발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19.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또한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에 관해서도,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20. 그러나 한 가지 책망할 일은, 스스로 예언자라고 칭하는 여자 이세벨을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는 일이다. 그 여자는 내 백성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잘못 인도하고 있으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느냐?
21. 내가 그 여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는 뉘우치지 않았다.
22.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고통중에 내던져 신음하게 하고, 똑같이 음란한 죄를 짓는 자들에게도 그러한 고통을 줄 것이다. 만약 지금 바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으면, 즉시 이 일을 행할 것이다.
23. 그 여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죽게 하여, 내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까지 살피는 자임을 온 교회가 알도록 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행한 대로 갚을 것이다.
24.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 안에 그녀의 가르침을 좇지 않고 사탄의 깊은 비밀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다른 짐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25. 내가 갈 때까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거라.
26. 마지막까지 내 뜻대로 행하고 승리하는 자에게는 모든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줄 것이다.
27. 쇠막대기로 그들을 벌하여 너희 앞에 복종케 하여 질그릇같이 그들을 깨뜨릴 것이다.
28.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와 똑같은 권세이다. 또한 새벽 별도 네게 주겠다.
2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요한 계시록 (2:18 - 29)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예수님의 모습

한번은 전도하다가 퇴짜를 맞고 낙심해서 예수님에게 불공평하다는 불만같은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베드로와는 수년을 함께 지내셨고 바울에게도 직접 그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들과 같이 직접 예수님을 대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만나니 너무 불공평합니다 ...
그런 유치한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모습이 생생히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 꿈속에서 뛸듯이 기뻐했다. 그 십자가는 마치 카메라의 줌인과도 같이 나에게 더 가까운 예수님의 모습, 그 중에서 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붉은 색 페인트 깡통을 머리에 뒤집어 쓴것과 흡사했다. 피가 너무 흘러 겨우 눈을 뜨고 계셨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기뻐하던 나는 울었다. 예수님 이런 식으로 나를 구원하셨군요.
그런데 꿈에서 십자가를 처음보고 왜 뛸듯이 기뻐했는 줄 아는가? 놀랍게도 이런 생각때문이었다. "이제 나도 드디어 히트치는 구나! 사람들 모아놓고 간증도 하고 자랑도 하고 그래야지!" 이것 때문이었다. 그 짧은 시간조차도 ... 도대체 나의 어떤 부분이 이렇게 하는 걸까?
나중에 깨달았지만 나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였다. 그런 날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날 대신 십자가에 올라가시고 눈을 뜨지 못할 지경까지 피를 흘리신 것이다. 이런 나를 위해 말이다.

2008년 8월 23일 토요일

뒷장

당신은 전도를 해 본적이 있습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모두는 죽어야만 마땅한 죄인이라고 말씀해 보셨습니까?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십자가에 올라가심으로 대신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보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 증명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통해서만이 구원받을수 있다고 분명히 전하신 적이 있습니까?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실제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안타깝게 지옥가는 영혼을 막을 수 있는 참된 전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복음을 어떤 방법으로 전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에 대한 개념과 전략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에 따른성경의 근거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한번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이 돌이켜 변화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성령님의 역사로만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닌 나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숨은 동기때문이며, 또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남들에게 전할 만큼의 기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실제 현장에서 한 명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어떻게 하면 불신자가 빨리 알아들을 수 있는 가를 저자 스스로 가다듬고 또 가다듬은 실전 전도방법에 대한 기록이며, 저자와 동일한 고민을 하는 많은 새로이 거듭나는 전도자들과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료입니다.

이 책은 오로지 우리에게 임하신 엠마누엘 하나님 예수님을 성경적으로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그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따라 부어주듯이 주시는 전도자에 대한 축복과 저의 간증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전도하는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신 모든 열방이 복음을 듣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요한복음 12:26)

예수를 전하기 위해 애쓰는 평신도 전도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자 지음

이 책을 쓰는 목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전투을 상상해 봅시다. 총탄이 빗발치듯 날으고 포탄이 떨어집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만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병사들은 저마다 지급받은 무기를 들고 전투에 임합니다. 어떤 병사는 소총을 들고 달려가고, 다른 이는 큰 포탄을 대포에다 장전하고 있고, 어떤 이는 많은 총탄을 한 꺼번에 쏠 수 있는 기관총을 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한 바탕 큰 전투가 지나가고 나면 그 격렬했던 순간들은 간데 없고 주위 여기 저기서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립니다. 또그 들중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승리의 순간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린 주검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는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전체 전쟁의 승부가 날때까지 몇 년, 몇 십년 혹은 그 이상 계속 사람을 바꾸어 가며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한 커다란 전쟁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했던 한 명의 소총수의 이야기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 소총수는 자신이 전투에 처음 나가게 됐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 자는 처음에 많은 사람들로 부터 왜 전쟁에 나가야만 하는 가를 전해 들었고 그 이유를 진심으로 깨달았을 때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 우리 대장님은 피를 다 흘리시고 큰 고난을 받았음에도 내가 그 분을 몰랐구나 하는 미안함과 그 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으로 그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총쏘는 방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여러 사람으로 부터 많은 가르침을 배웠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의 훈련이 끝나고 전쟁터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아무도 실제 전쟁으로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전쟁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테잎을 들고 길에도 나가보고 책상을 펴놓고 몇 달간 길에 앉아있어도 보고 한사람씩 찾아다녀보고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줄을 몰라 그저 교회만 나와보라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분들과의 영혼의 교감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지는 시점에서는 언제나 저 혼자였습니다.

여담이지만,제가 전도했던 분중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게 된 기쁨을 넘어서서 전도자로 나서기를 결심하는 분들에게는 저는 꼭 다음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도는 외로운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나 막막하고 주위에서 실질적인 도움은 얻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물론 전도에 대한 지침이 시중에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실제 그것들을 이해한 분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고 또 내 주위에서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실제로 한번도 그런분을 제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 물론 한국에는 참다운 영적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 그래서 한 때는 하나님께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기댈수 있는 참 전도자를 만나고 또 함께 일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응답주셨습니다. 그런 저의 기도를 통해 도리어 그들의 마음을 제가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과 또 이렇게 나눌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18)

그 많은 날들 동안 저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소총수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직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만으로전쟁터로 걸어가는 그 소총수들에게 이 책이 실용적으로 쓰이기를 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과거의 나와도 같은 분들을 돕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외워도 될 것입니다. 또 외운 그 말들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이 믿음 없는자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던 그 긍휼하심을 닮아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말씀하게 해주신다고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응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마가복음 13:11)

이 책의 내용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말씀과 또 그것을 어떻게 하면 쉽게 빨리 전하려고 노력했던 많은 전도자들의 노력들을 통해 어디선가 제가 전해들은 것이 다시 정리되서 나오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발췌하고 복사해서 영혼구원에 어떤 형태로든 다시 사용되어지기를, 그래서 나를 위해 흘리신 하나님의 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데 사용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이름을 이 책의 저자라고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군가로부터 받아서 단지 중간에서 다른 사람에게 배달만 하는 자가 그 이름을 저자로 올리는 것은 합당치 않은 듯합니다.

이책은 성령님이 저의 전도자로서의 십년 조금 남짓되는 기간동안에 내내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신 것들을 말씀에 바탕해서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훌륭하신 분들이 읽으시고 잘못된 것 혹은 예수님을 잘못 전할 소지가 있는 내용이 있다면 저에게 꼭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 이 책이 더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평신도 전도자를 위한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08년 8월 작은 소총수 씀.

2008년 8월 22일 금요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전도방법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깨달았다면 전도할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가진 우리는 24시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수님도 쉬시고 주무시고 하셨다. 물론 쉬시는 중에도 자신에게 다가온 여인을 전도하셨다.

다음의 두가지 방법은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이 전도하고 싶은 마음은 있고 또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자이지만 어느 기간동안 상황때문에 전도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1. 작은 성경을 수십권 차에 두고 동냥을 줄 때마다 함께 건넨다.

길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들에게 동냥을 줄때가 있다. 분명 동냥을 준다는 행위자체는 나무랄 바는 아니지만 복음과는 별개의 행위이다. 절에 다니는 사람도 혹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분명 성경에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매번 그리스도 이름을 전할 수 없다면 작은 성경을 돈과 함께 건네주자. 그 사람들은 분명 읽어볼 수 있다. 나도 옛날 어릴적에 길에서 나눠주던 아주 작은 신약성경(한국 기도온 협회에서 나누어 준것으로 기억한다)을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래의 주소는 이 작은 성경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이다.
  • 성경을 무료(혹은 저렴한 가격)에 구하는 방법
    (http://christianity.about.com/od/practicaltools/ht/freebible.htm)

  • 미국 기드온 협회에서 작은 성경을 구하는 방법
    (아래는 그 협회에서 나의 문의에 대해 보내온 답장입니다)

    Thank you for writing to The Gideons International in quest of Bibles.

    We do give free Bibles and pocket Testaments to institutions where people are housed overnight. This includes hotels, hospitals, nursing homes, jails, and rescue missions, as well as distributions to military, colleges, and schools (5th grade and up).

    We also print Bibles and Testaments without the Gideon emblem that we sell in small quantities to individuals (who are outside of institutions) for their personal use. These are exactly the same Bibles or Testaments seen in any institution, except the color will be brown.

    The Holy Bible (like in a hotel) is available in the King James Version and sells for $8.75 each. The maximum that can be purchased at one time is ten.

    The blue soft cover bold print New Testament in the King James Version sells for $4.00 each. The maximum that can be purchased is ten.

    The pocket New Testament sells for $2.50 each and is available in King James Version or New King James Version. The maximum that can be purchased is twenty-five at a time.

    You may purchase your order by phone (615-564-5000) with a credit card or mail in check or money order to cover the amount of Bibles needed. We pay the shipping charges, and there is no tax. Our mailing address is The Gideons International, P.O. Box 140800, Nashville, TN 37214-0800. Once we receive your order, it takes about two weeks to process.

    If more are needed than we can provide, we suggest you contact the American Bible Society in New York City at 800-322-4253.

    Sincerely yours in Christ,

    Miranda Haley

    Office of Rick Mosley

    Assistant Director, Support Services



    ** 그들은 킹제임스 성경만을 전하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가장 정확히 말하고 있는 번역본이며, 현재 미국에서는 킹제임스(KJV Version)이 가장 보편적으로 읽힌다. 이 번역본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통 킹제임스 성경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하고 있으며 여기에 맞서 말씀보존학회라는 곳에서는 사명으로 킹제임스 성경보급에 나서고 있다.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번역본은 정통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다.

2. 자동차 스티커

차가 가고 설때 언제나 앞 차를 빤히 보게 된다. 이 때 범퍼 스티커에 불신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이나 예수님 소개를 적어놓자. 나는 차에 "Jesus Still Loves You"라는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여놓았다. 지금의 차를 현재 십년 넘게 타고 다녔으니 하루에 5명만 그것을 보았더라도 일년에 대략 2000명 X 10년이라면 2만명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 중 몇 사람만이라도 낙심되었던 자가 있었고 절대자(그들은 길되신 예수님 이름을 모르니까)에게 기도했던 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다 아신다.

내가 알던 어떤 목사님은 이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자기 교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온 교인차에 붙여놓게 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100명정도 되던 그 교회는 지금 문닫았다. 잘못된 스티커를 붙여서 그 교회가 문닫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런 것이 바탕에 깔려 늘 예수님보다 교회이름이 앞서다 보니 세상이라는 정글 속에서 혼자 힘으로 버텨야 되는 교회가 되었고, 당연히 우연의 법칙에 적용을 받아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그런 위치에 서게 된것이다.

아래의 웹싸이트는 간단하게 자동차 스티커를 만들수 있는 곳이다. 파워포인트에서 글짜를 쓰고 저장을 그림파일(JPG나 PNG)로 한 후, 이 파일을 다음의 웹싸이트에 올리면 몇개라도 만들어서 보내준다.

스티커 만드는 곳

교회부흥의 확실한 방법

저에게는 다음의 세가지가 성경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고 묵상한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경영학적 이론을 교회에 도입하려고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왜 그럴까도 생각해 봅니다. 저도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돈을 벌수 있나에 대해 생각해 볼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경영학적 방법론이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또 이윤추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 계획이 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1. 모든 일을 제쳐놓고 전도한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도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특별한 사람도 그 한계가 있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먼지와도 같아서 긍휼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 시편 103: 10-14

* 참고로 위의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그처럼 많이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고 그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가 죄인(우리의 체질)임을 아시고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지는 지옥 갈 운명(단지 먼지뿐)을 아시고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 멀리 옯기셨으며(예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의롭다(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아니하셨으니)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는 해야할 일의 종류가 무수히 많습니다. 각각의 일들이 모두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각각이 그 중요한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밥은 하루에 몇 그릇을 꼭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비타민 C는 그렇게 몇 그릇분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겨우 작은 알약하나 정도만 먹어도 충분한 것입니다.

교회의 할 일중에서도 모든 것을 다 잘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질은 그렇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분이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다 잘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교만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을 위주로 해보려는 일종의 인본주의 일것입니다.

교회부흥을 위해서는 전도해야 합니다. 심지어 친교도 하지말고 해야합니다. 저 자신도 교회 밥먹으러 나가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친교를 하지 않아도 가슴이 천성적으로 따뜻한 사람이 교회안에 많다면 저절로 되어집니다. 혹은 예배 끝나고 근처 식당에 가서 먹으면 교회 친교실처럼 바쁘지도 않고 중요한 이야기도 할 시간과 장소가 주어집니다.

문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대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다 잘할 만큼 여러분의 능력이 대단하지 않으시다면 한가지만 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2. 기도는 전도하면서 생기는 진짜 기도제목을 위해 진짜로 기도한다.

가끔씩 기도를 매일 5시간씩 했다고 자랑하는 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문제를 놓고 굉장히 몸부림치는 것이 보여 긍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자기 자신과 씨름을 저렇게 매일 오랜 시간 하다가 하나님과 언제 함께 일하실까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불속에서 만세부르고 계신다는 생각도 강해게 들었습니다.

기도할 때 일부러 간절해 지려고 노력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경건과 같다고 착각을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문제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도를 하다보면 진짜 기도제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긴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기도는 ~을 주십시오와 같은 종류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는 그냥은 잘 안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입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절함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도 전체의 진실성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다 일어난 일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던 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시 제가 살던 마을에 임하게 해주시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해달라는 기도를 무릎꿇고 오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기도가 잘못되었습까? 나 자신에 대한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 때 하나님은 그런 기도보다는 청년 A와 아주머니 B를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A와 B라는 사람은 그 때 제가 알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만나기가 꺼려졌던 사람이고 제 마음에 이미 다른 건 몰라도 이 사람들은 진실하지 못해서 전도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나름의 결론내려 놓았던 때였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살던 동네 전체가 전도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와 제가 가장 꺼려했던 그 두 사람을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어는 것이 진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어느 것이 이제 처음 믿은 자가 드리는 기도로서 교만한 기도라고 보십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 때 그렇게 꺼려했던 B아주머니는 놀랍게도 지금은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근심을 모두 자신이 담당한 것처럼 늘 부정적인 말만 하던 분이, 하나님께서 터치하심으로, 그 동일한 그 분의 성격이 이제는 불신자가 어떻게 하면 피흘리신 예수님을 알게 될까 늘 근심하는 그런 곳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몇 시간씩 전화해서 어떻게 복음전해야 하는지 이럴때는 어떻게 하고 저럴때는 어떻게 하는지를 묻고는 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하나님 나라를 구할 간절한 기도제목이 저절로 주어집니다. 전도를 하려고 하다보면 내가 복음을 얼마만큼 깨달았는지 금방 드러납니다. 또 불신자와 단 몇 분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대화끝에 획 돌아서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참으시는 것과 그 긍휼함을 사모하게 됩니다. 아무리 전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는 자를 보며 성경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이 집을 다섯번이나 나가 나중에는 남의 애까지 잉태한 아내를 찾으러 나가는 자와 같다고 하신 그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저절로 깨달아집니다. 내 입이 너무나 어눌하고 세상의 불신자들은 마치 텔레비젼 아나운서와 같이 논리정연하게 나에게 반박하는 것을 볼때 하나님! 나에게 이 사람의 모든 말을 뛰어 넘어 마음을 돌려세울 능력을 사무치게 원하게 됩니다. 혼자 전도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면 내가 기댈 참 전도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됨과 동시에 놀랍게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정확하게 구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시면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이 저절로 깨달아집니다. 원래는 목사님이 전도를 제일 잘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지요. 현실은 이 순서가 전도를 가장 두려워 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일반인이 노래하다 틀리면 아무 실수도 안되지만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가 틀리면, 혹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큰 창피를 당하는 것 때문일것입니다.

이것이 거꾸로 직분자들을 전도하지 못하게 묵어놓은 족쇄가 됩니다. 이러한 우리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단은 얼마나 영악한 자입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을 버립시다. 그것이 참된 의미의 교만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종류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120% 응답하신 다는 것입니다. 왜 120%라고 썼냐하면 100%응답되는 것은 당연히 받게 되는 것이고 또 언제나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 많이 언급하셨음을 아실 것입니다.

3. 하나님 이름으로 모여 1시간 말하면 예수님이라는 단어를 50번이상 이야기 하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주일 설교가 될 수도 있고, 성경공부가 될 수도 있고, 전도현장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위주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신약 성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 처음부터 끝까지를 의미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 : 39)

참고: 구약성경에 수없이 기록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성경의 깊은 것을 깨닫는 데 아주 중요하다. 많은 분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저절로 깨닫는다. 마치 신약성경의 예수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 나도 정말 많은 부분을 이렇게 깨달았다. 시중에 잘 찾아보면 굉장히 많은 숨은 기록들이 있다. 놀라운 건 이런 책들은 전혀 베스트 셀러가 아니다. 어쨌든 내가 읽어본 책중 다음의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래에 나오는 레위기(성경 ...) 설교를 봅시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지으라고 명하신 일종의 텐트, 즉 성막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성막을 처음 들어갈 때 바로 보여지는 죽임당하는 짐승 혹은 번제단에서 태워지는 짐승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나 대신 죽으신 하나님, 즉 그 예수님말입니다. 레위기(성경...) 본문에 나온 데로 나를 위해 죽임당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두멍에 손을 씻는다 즉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는 첫 단계입니다. 다음에 떡이 나옵니다. 그 떡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육체의 떡만으로 살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떼는 떡은 내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이 무서운 성막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 찟어진 성막은 바로 예수님의 육체를 말합니다. 그 찢어진 육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은혜는 예수님의 이름이 몇번 나오느냐와 정비례합니다. 만약 1시간을 이야기 하는데 한번도 예수님을 말하지 않거나 끝머리에 마치 장식품처럼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당신의 직분이 무엇이건 예수님의 피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사람의 속성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나 혹은 부모가 수십년을 말해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런 강퍅한 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화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복음의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며 교만을 넘어서 소경이 소경을 이끌게 되는 명백한 죄악이다. 왜냐하면 두 소경이 모두 죽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 이름을 50번 이상 말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하나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는 하지 마라. 거실에서 TV보며 얼마든지 자유롭게 혹은 직장에서 부하직원을 모아놓고 얼마든지 나누어도 된다. 단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어야 한다.

2008년 8월 18일 월요일

나는 언제부터 전할 자격이 되는가 그리고 무엇을 전할 것인가?

현혹되기 쉬운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어떤 말은 너무나 그럴싸 해서 몇 시간 혹은 몇 일이 지나고서야 그 말을 한 사람의 참 뜻을 깨달게 될 때도 있다.
나 자신은 전도때문에 혹은 타고난 성격때문에 말할 때는 될 수 있으면 쉽게 요점을 이야기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로는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될 땐 돌려서 이야기 하게 되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후회할 때가 많다. 전하려는 메세지가 전달 되지 않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인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이런 현혹되기 쉬운 말들이 있다. 특히 전도와 관련되어 이런 말들은 전도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낙심시킬 때가 있다. 바로 전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나 혹은 어떤 자격같은 것을 받아야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물론 성경에도 "에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라는 말로 나와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란 언제 받는 것인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적인 용어보다는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심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고마와서 진심으로 눈물이 날때! 성경에도 성령이 아니고는 주를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그 은혜가 있다면 이미 전도할 자격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부차적인 것이 더 필요하지 않다. 내가 현재 매일 아내나 남편과 싸우는 못난 사람일 지라도, 혹은 내가 매일 돈 때문에 걱정하는 나약한 믿음일지라도, 성경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안 읽어본 초신자라 할 지라도 ... 내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전도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알면 왜 전할 수 없는가?
가끔씩 이런 말을 듣는다. 말씀으로 충분히 양육되고 자신의 교만이 낮아져서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을때 전도해라 - 이 말은 실제로 내가 언젠가는 들었던 말이고 몇 시간이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전도자의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던 그 "현혹되기 쉬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은 이렇게 되기가 굉장히 힘든다. 평생 우리가 성화되어가는 자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때, 즉 자격이 되어 전도할 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는 때는 내 삶에서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본다면 너는 평생 전도하지 말라는 말과도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전도자가 현혹되기 쉬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도자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육의 존재 - 하나님께 복종할 수도 없고 (롬 8장) - 가 이런 말에 항상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또 한가지 이런 종류의 말로, 전도의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있다. 즉 성도는 성경공부 혹은 말씀을 전하는 것을 교회의 지도자에게 맡겨야 하고 혹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 많이 사용되어지는 말이 바로 교회내의 질서라는 말이다.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전도가 되어 지지 않는다. 전도라는 말 자체가 예수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그 마음을 돌려놓으시지만 전해서 듣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마음을 예수께로 돌릴 수 있는가?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로마서 10:14-15)
나이를 먹어가면서 또 여러 사람을 만나가면서 사람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싶지만 그것은 깊은 심연과도 같아 진정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란 어떨때는 단 한 가지일에 대해서도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본인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모를때가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현혹되는 말들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어떤 충고의 형태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아주 세련된 방법을 통해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셨다. 마음을 열은 자는 누구든지 듣고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누가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하기 어려운 것으로,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전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 배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존재가 세련된 방법으로 복음으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중세시대의 신부들이 성경의 권위를 세운다는 미명아래 일반인들에게 성경을 못 읽게 했던 것처럼 ...